아버지 빚, 상속포기 잘못했다간 내 자식이 떠안는다[더 머니이스트-정인국의 상속대전]

입력 2022-03-04 09:40   수정 2022-03-04 14:15

방탕한 씨는 젊은 시절부터 음주가무를 좋아했습니다. 문제는 결혼한 뒤에도 유흥에 빠져 가족의 생계를 돌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때문에 방탕한 씨의 딸 방하나 씨는 어린 시절에 심한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네요.

방탕한 씨의 장례식을 마친 후 아내 박복희 씨와 딸 방하나 씨는 상속재산을 정리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방탕한 씨 명의의 집 한 채가 남아있기는 했는데, 집을 팔아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숨겨진 채무가 계속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지요.

방하나 씨는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상속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상속인들이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인들의 자녀가 상속채무를 승계한다고 하네요.

이런 경우에는 상속인들 중에서 한 사람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 상속인들은 상속포기를 하는 게 가장 깔끔한 해결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방하나 씨는 어머니와 협의해서 어머니 박복희 씨가 한정승인을 하고, 방하나 씨는 상속을 포기하기로 협의하고 법원에 신고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날벼락 같은 일이 발생했어요. 망인의 손녀, 그러니까 방하나 씨의 딸이 방탕한 씨의 채무를 전부 승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상속인들 중 일부는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는 상속포기를 하라는 조언대로 따랐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빚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 상속포기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우선 피상속인의 사망에 따른 상속순위를 살펴보면 ①직계비속 및 배우자 ②직계존속 및 배우자 ③형제·자매 ④4촌 이내 방계혈족 등입니다. 문제는 선순위 상속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후순위 상속인에게 상속이 진행된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의 효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상속포기」는 상속인의 지위 자체를 포기하는 겁니다. 이 경우 상속재산과 상속채무를 모두 물려받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후순위 상속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상속포기만으로 법률효과가 종결되는게 아닙니다. 선순위 상속인이 포기한 상속재산과 상속채무는 후순위 상속인에게 넘어갑니다.

「한정승인」은 망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상속채무를 승계하게 됩니다. 선순위의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하면 후순위 상속인에게 상속이 진행되지 않고,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 단계에서 법률효과가 종결됩니다.
상속인들 중 누가 '한정승인' 하느냐가 관건
상속을 포기하게 되면 후순위 상속인에게 승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후순위자로의 상속을 차단하기 위해서 한정승인이 필요합니다. 동순위의 상속인이 여럿 있는 경우에 가장 원만한 해결책은 상속인 중 1인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 상속인들이 상속포기를 하는 겁니다.

다만 이 사건처럼 망인에게 배우자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망인의 배우자가 아닌 망인의 자녀들이 한정승인을 해야 합니다. 경우를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딸 방하나 씨가 상속을 포기하고, 아내 박복희 씨가 한정승인을 한 경우

방하나 씨에게는 자녀가 있지요. 망인의 손자녀 역시 망인의 직계비속입니다. 따라서 방하나씨가 상속을 포기하면, 방하나 씨의 딸과 배우자 박복희 씨가 공동으로 상속인이 됩니다.

박복희 씨는 한정승인을 하였으니 상속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상속채무를 갚으면 됩니다. 반면 방하나 씨의 상속포기 후 방하나 씨의 딸이 별도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았다면 단순승인에 해당하지요. 따라서 망인의 손자녀인 방하나 씨의 딸이 상속채무를 전부 승계하게 되는 겁니다.

2. 아내 박복희 씨가 상속을 포기하고, 딸 방하나씨가 한정승인을 한 경우

이 경우 배우자인 박복희 씨는 상속을 포기했고 방하나 씨가 한정승인을 했기 때문에, 방하나씨가 단독상속인이 됩니다.

단독상속인인 방하나 씨는 한정승인의 효과에 따라 남아있는 상속재산의 범위에서만 상속채무를 갚으면 됩니다. 방하나 씨의 딸에게 상속이 진행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방하나 씨가 상속을 포기하고 박복희 씨가 한정승인을 할 것이 아니라) 박복희 씨가 상속을 포기하고 방하나 씨가 한정승인을 했어야 합니다. 상속 관련 의사결정을 하기에 앞서, 법률적으로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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